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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원료를 찾아서

날짜
2025/06/19
맥주의 원료는 물, 맥아, 홉, 효모입니다. 농부가 농법으로 정체성을 나타내듯이 양조사는 맥주의 원료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히브루가 농부로 출발한 양조장이기에 가능한 국산 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올해는 국산 재료에서 더 나아가 지역(홍성군)에서 길러진 농산물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맥주가 서양에서 들어온 음료이기에 어쩔 수 없이 외국산 재료를 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맥주의 주원료인 맥아는 크게 베이스몰트와 스페셜몰트로 나뉩니다. 베이스몰트는 맥아 구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맥아이고, 스페셜몰트는 고온에서 로스팅해 베이스몰트에 비해 강한 향과 풍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맥주 색깔을 진하게 하거나 풍미를 끌어올리고 싶을 때 일정 비율의 스페셜몰트를 사용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 곳의 양조장에서 자체 사용 목적으로 베이스몰트를 생산 중이며, 판매용은 군산맥아영농조합법인 한 곳에서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정이니 국산 스페셜몰트는 아직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외국산을 쓸 수밖에 없다면 유기농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여러 외국 업체들을 찾아보고 직접 연락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유기농 몰트를 만드는 곳이 많이 없기도 했고 이히브루에서 필요한 종류(겨우 세 가지이지만)를 다 구비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큰 업체들의 경우에는 유기농 몰트를 생산하고는 있지만 대량으로만 구매 계약이 가능하다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시도 끝에 직접 수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국내 대행 업체에 부탁을 드렸는데, 딱한(?) 저희의 사정을 고려해서 작은 물량을 수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비온뒤 맥주부터 바이어만에서 생산한 카라레드라는 유기농 몰트가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홉의 경우 80년대에는 일부 수출까지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재배가 많이 되었지만 농산물 수입 개방이 되면서 가격 경쟁력에 밀려 더이상 재배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일부 농장에서 다시 농사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맥주에 쓰는 펠렛 형태로까지 가공하는 곳은 의성군의 홉이든 한 곳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맥주에 필요한 다양한 품종의 홉을 구하기 위해 절반 정도는 외국산 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기농 홉을 찾는 과정도 지난하였습니다. 구글로 업체를 검색하고 유기농 제품군이 보이면 메일이나 메시지를 보내 연락을 시도하였지만 번번이 제대로 된 답변조차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의 홉스토어라는 업체를 알게 되었고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업체 대표님은 생태학 공부를 한 분인데, 이런 전공을 십분 발휘하여 회사 운영도 굉장히 환경친화적(이면지도 끝까지 활용)으로 하고 유럽 각 지역의 홉 생산자들과도 장기 계약을 통해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더라구요. 지난 겨울 수입한 홉스토어의 유기농 홉이 이번 비온뒤 배치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유기농 맥아와 홉이 들어갔다고 맥주의 맛이 갑자기 변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음식(음료)은 최대한 그 지역의 토양과 정신을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벨에 들어가는 원재료명이 수입산에서 국산으로, 국산에서 홍성군으로, 그리고 유기농으로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양조사로서 큰 기쁨이기도 합니다. 양조를 하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이히브루는 농부님들이 만든 재료를 배합하는 사람일 뿐, 농부님들의 수고로움이 없이는 맛있는 맥주 한 잔이 탄생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농부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