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이히브루 맥주 이야기 2

어스름은 맥주 이야기 2탄에 걸맞게 이히브루에서 두 번째로 내놓은 맥주입니다. (오늘은 마침 숙성을 마친 어스름을 병에 담는 작업 중이니 곧 이히브루 친구가게와 여러분들에게로 어스름이 전해지겠지요
.)
국산 곡물의 맛을 알려보고자 맥주 시리즈 초반 구성을 잡았고 그렇게 쌀맥주에 이어 보리맥주인 어스름 페일에일을 만들게 되었어요.
페일에일(Pale ale)은 수제맥주의 대표적인 스타일 중 하나입니다. 곡물과 홉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맥주라 수제맥주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싹이 난 보리를 건조시킬 때 사용하는 열원이 나무에서 석탄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옅게 건조시킨 페일에일 양조가 가능해진 시기가 대략 1700년대(영국 기준)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맥주 역사랑 비하면 시냇물과 바닷물 차이쯤 되려나요?
같은 페일에일이라도 영국과 미국의 스타일이 서로 다른데요, 영국이 상대적으로 홉보다 곡물에 비중을 둔다면 미국은 곡물보다 홉에 중심을 두고 만듭니다. 반면, IPA(India pale ale)는 맥주의 맛에서 홉의 비중을 극대화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홉의 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드라이호핑(dry hopping)이라는 방식이 사용됩니다. 발효 중간, 그리고 발효 후에 많은 양의 홉을 넣어 그 향미가 최종 제품에까지 남아 있도록 설계한 맥주가 바로 IPA입니다.
어스름은 이히브루의 다른 맥주와 마찬가지로 국산 건조맥아를 사용해서 양조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맥주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는 물과 건조맥아(맥주의 기본 재료이기에 베이스 몰트로 분류됩니다.)입니다. 맥주에 색과 풍미를 더해주는 스페셜 몰트(볶은맥아)나 홉, 효모는 그 무게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산시에서 가공되는 건조맥아는 필스너 몰트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저온에서 건조하기에 페일에일 몰트보다 색상이 연하고 깔끔한 맛이 나고 에일보다는 라거에 적당한 맥아입니다. (현재 국산 페일에일 몰트를 생산, 판매하는 곳은 아쉽게도 없습니다.) 필스너 몰트가 70~80도 정도에서 공정을 마무리한다면 페일에일 몰트는 90도 이상까지 작업 온도가 올라가니 그만큼 색상과 맛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필스너 몰트로 페일에일을 만들어야 했기에 고온(120도 정도)에서 볶아진 스페셜 몰트를 추가하여 자칫 약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몰트(맥아)의 진한 향과 맛을 끌어 올리고자 했습니다. 추가하는 스페셜 몰트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독일 바이어만(Weyermann)의 카라뮤닉이라는 몰트인데 다음번 배치(3월)부터는 독일 Bioland 인증을 받은 유기농 몰트를 사용할 예정이라 두 버전 맛의 차이도 느껴보시면 재미있을 듯합니다.
페일에일에서 홉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스름에는 경북 의성 홉이든에서 키운 치눅(Chinook), 캐스케이드(Cascade)와 강원 홍천 케이홉스유통지원센터에서 만든 케이홉스라는 홉까지 세 가지 종류의 국산 홉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케이홉스라는 품종은 홍천의 야산에서 발견된 일종의 토종 홉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겠습니다. 홍천군의 경우 90년대 초반까지 홉 농사가 활발히 지어지던 곳인데 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그 명맥이 끊어졌다가 최근 다시 부활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80년대까지 홉을 자급하고 수출까지 했다는 자료가 있던데 이런 역사가 이어지지 못한 것은 분명 세계화의 어두운 면이자 아쉬운 대목입니다.

어스름의 마지막 재료는 바이오크래프트의 액상효모입니다. 곡물로부터 비롯된 당분을 알콜로 발효시키는 효모는 그 양은 적지만 맥아, 홉과 함께 맥주 재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맥주에 어떤 효모를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맥주의 맛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스름을 비롯한 이히브루의 다양한 맥주가 가지는 깔끔한 맛의 비결, 그 핵심에는 바로 바이오크래프트의 건강한 효모가 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어스름한 시간, 어스름한 맥주 한잔이 필요한 분들께 권하는 맥주, 어스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