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이히브루 맥주 이야기 3
봄 계절맥주 '풀풀'
사계절 내내 만드는 일상 맥주(year-round beer)는 농부님들이 키워주신 쌀, 보리, 밀 같은 곡물을 중심으로 만들었다면 특정 시기에 양조하는 계절 맥주(seasonal beer)는 제철에 난 것들, 혹은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식물의 특징을 잡아 레시피를 구성했습니다. 여름 맥주 ‘여름은’에는 새콤달콤한 보리수 열매를, 겨울 맥주 ‘긴긴밤’에는 깊고 구수한 민들레 뿌리를 넣어 만들고요 봄 맥주 ‘풀풀’은 대표적인 봄풀인 쑥을 넣고 만들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지나 맞이하는 봄은 그야말로 소생의 계절이니 봄 맥주에 들어가는 재료는 사람이 키우는 작물보다는 들판에서 자연스럽게 돋아나는 풀이 적당해 보였습니다. 풀풀농장 시절 땅을 갈지 않고(무경운) 농사지으니 해를 거듭하면서 쑥이 밭을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지더군요. 땅 밑에서 뿌리로 번식을 하는 쑥의 확산 속도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캐내 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이내 없앨 수 없다면 먹어 없애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해마다 초봄이 되면 하루 종일 밭에 앉아 쑥을 캐었습니다. 일부러 재배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이곳저곳에서 자라는 야생의 풀인 쑥을 마른 검불들 사이를 헤집으며 캐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한번 먹어보면 따라올 수 없는 들풀 쑥의 향과 맛에 반해, 매해 쑥을 캐어 국도 끓여 먹고 덖어 말려 차로도 먹고 떡도 해 먹고 효소도 담아 먹고 쑥 우린 물에 목욕도 하던.. 우리집 농가 살림에 없어서는 안 되는 봄풀이었지요. 그런 쑥을 ‘풀풀’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합니다. 자연이 주는 맛에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이 함께 들어간 작품입니다.
쑥을 넣어 봄의 기운을 담은 계절 맥주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을 때 떠오른 맥주 스타일은 바로, 세종(saison)이었습니다. 세종은 계절(season)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1700년대 벨기에 농촌 마을인 왈롱(wallonia) 지역에서 겨울이나 봄에 양조하여 보관해 두었다가 봄, 여름 밭에서 먹던 농가 맥주입니다. 우리나라의 농부들이 일하다 즐겨 마시던 새참용 막걸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정해진 레시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맥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농가 맥주를 표방하는 이히브루와 ‘세종’이라는 맥주 스타일은 그래서 아주 귀한 만남입니다.
풀풀 맥주가 이히브루에서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100% 국산 원료로 만들어진 맥주라는 점입니다. 이히브루의 맥주들 대부분 국산 재료의 비율이 높지만 맥주별 특성을 살리기 위한 스페셜 몰트나 홉 등 한두 가지의 외국산 유기농 원료가 포함되어 있는데, ‘풀풀’ 맥주(와 햇밀 맥주 ‘라당스’도!)는 맥아부터 부재료인 쑥, 홉, 효모까지 모두 국산 재료로 양조하였습니다. 농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온 세종 스타일의 전통을 살리며 더불어, 농가 브루어리인 이히브루를 ‘풀풀’을 통해 분명히 알리고 싶었습니다.
아직 많이 사용되지 않은 국산 재료들의 조합이 어떨까 설레기도 걱정이 되기도 하였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다채로운 맛에 놀랐고 특히나 발효 중 올라오는 향이 놀라웠습니다. 바이오크래프트의 세종 액상 효모(BC-47)를 사용하였는데 발효 온도가 18~30도까지 폭넓게 되어 있어 효모의 활동 폭을 양조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게 넓은 발효 온도 대역과 다양한 재료들을 넣을 수 있어 여러분들이 만나는 세종 맥주는 같은 스타일이라 해도 꽤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그게 바로 세종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이히브루의 봄 계절 맥주 세종 ‘풀풀’이 입맛에 맞으셨다면 이히브루가 추구하는 맥주의 모습과 당신의 취향이 닮은 것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