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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시 비온뒤

날짜
2026/04/01
맥주
이히브루 방구석 맥주 이야기 4탄 비온뒤
2023년 6월 17일. 우여곡절 끝 이히브루의 첫 맥주를 병에 담았습니다.🥹🥹 그 맥주의 이름은 비온뒤입니다. 이히브루에 앞서 우리는 풀풀농장이라는 이름으로 2010년부터 ‘조동지’라는 토종쌀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 마시던 그때, 조동지쌀을 기본으로 다양한 형태의 맥주를 만들어 보았던 경험들이 나중에 이히브루 양조장을 준비하며 맥주 라인업을 구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맥주를 만들어 마시며, 내가 먹는 이 맥주를, 다른 누군가도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양조장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히브루의 첫 맥주 ‘비온뒤’는 이히브루의 시작이자 상징과도 같습니다.
풀풀농장에서 이히브루로 이어진 맥주의 여정은 ‘우리가 농사지은 쌀로 맥주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작은 질문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마침 동네에 베를린에서 양조 공부를 하고 온 형님께 여쭈어보니 쌀이 들어간 맥주도 만들 수 있다는 ‘유레카’ 같은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장 형님과 집 앞마당에서 들통에 물을 부어 엿기름과 쌀밥을 넣고 가스불에 끓인 후 홉과 빵 이스트를 투입해 첫 맥주를 만들었지요. 결과물은, 거칠었지만 분명 다름 아닌 맥주의 맛이었습니다.
맥주가 보리(麥)로 만들어지는 알코올 음료이지만 쌀이 부재료로 첨가된 형태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국내 기업이 만든 한맥부터 중국의 칭따오, 일본의 아사히 슈퍼드라이, 미국의 버드와이저 등 우리가 이미 많이 마셔온 맥주들 중 쌀이 들어간 것들이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맥주의 주원료인 맥아를 덜어내고 쌀을 넣으면 맥주맛의 바디감이 가벼워지고 목넘김이 깔끔한 특징을 보입니다. 그래서 쌀맥주는 에일보다는 라거 맥주에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라거는 에일보다 저온에서 발효되기 때문에 발효가 끝나는 시점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발효 중 발생하는 잡미를 없애기 위해 추가로 오랫동안 저온 숙성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한 배치를 완성하는데 보통 2~3개월의 시간이 걸려요. 발효 탱크가 하나뿐인 이히브루는 아쉽지만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라거를 만들 환경이 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깔끔한 라거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묻어두고 선택한 스타일이 쾰쉬(Kolsch)였습니다.
쾰쉬는 100여 년 전 독일 쾰른 지방에서 시작된 스타일로 에일 효모로 발효되지만 저온에서 숙성되어 라거와 같은 깔끔한 특성을 지니는 하이브리드 맥주입니다. 쌀이 갖는 깔끔하고 부드러운 목넘김에 상큼한 피니쉬를 지닌 쾰쉬 스타일의 쌀맥주를 만들고자 한 것이 바로 비온뒤의 밑그림이었습니다.
비온뒤가 쾰쉬 스타일에 바탕을 두고 있긴 하지만 맥아의 일부를 쌀로 대체했다는 점과 고온에서 볶은 카라멜 몰트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정통 쾰쉬와는 또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토종쌀 조동지를 넣어 쌀이 가진 특유의 향미를 맥주에 얹고, 독일 바이어만(Weyermann)사의 볶은맥아를 이용해 맛과 색상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쾰쉬가 가지는 섬세한 아로마를 높이기 위해 프랑스 홉스토어(Hopstore)에서 가공한 할러타우 블랑(Hallertau Blanc), 사츠(Saaz), 트러디션(Tradition) 홉을 사용했습니다. 비온뒤에 들어가는 조동지쌀, 볶은맥아(카라레드), 홉은 모두 유기농 재료들인데, 이히브루 맥주 라인업 중에서 유기농 원료 비율이 가장 높은 맥주이기도 합니다.
맥주를 좋아하는 토종쌀 농부가 만든 쌀맥주, 비온뒤는 너와 나의 연결고리랄까요?
비 오기 직전까지 씨앗 뿌리고 풀 베고, 모종 옮겨 심고 정신없이 바삐 움직이다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하면 농부는 바쁜 일과를 잠시 멈춥니다. 물이 되고 거름이 되는 비가 오면 작물에도 농부에게도 너무 행복한 순간이지요. 비 온 뒤, 말갛게 갠 하늘과 빗방울을 오종종 단 풀잎을 보고 있노라면 쌓여있던 근심, 걱정이 스르르 녹는 기분입니다.
우리에게 비 온 뒤의 순간이 그러했듯이 우리의 맥주 이름에 비온뒤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맥주를 드신 분들도 비 온 뒤의 순간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을 맥주에 담았습니다.